이 여행기의 실제 여행일은 2003년 4월 6~8일입니다.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옮기는 과정에서 작성일과 좀 차이가 납니다만, 여행 당시의 기록을 최대한 살리면서 현재와 다른 점은 부연설명을 더했습니다.

35일차, 프라하를 떠나려는데...

일행 중 한 명이 프라하에서 오페라도 볼 겸, 맘이 편안한 파벨아저씨집에서도 푸욱 쉴 겸, 겸사겸사 하루를 더 머무르자는 제안을 했다. 그리하여 하루 더!

프라하는 예전부터 많은 문화행사가 행해지는 곳이었다. 모차르트의 돈지오바니의 초연이 이 도시에서 행해졌으며, 그때의 그 건물이 아직도 남아있다. 물론 당시의 지휘자는 모차르트 본인. 더군다나 요즘엔 연간 수백만의 관광객이 찾기 때문에, 거의 매일 문화공연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로 두 가지 형태의 문화예술 행사가 있는 듯 했다. 관광객들만을 상대하는 약간은 허접한 사설행사들과 국립극장 등에서 행해지는 조금은 뽀대나는 공식(?)행사. 알아보니 국립극장에서는 오페라 나비부인을 저녁 7시에 공연한다고 했고, 일행중 2명이 그 공연에 가기로 했다. 정식으로 표를 예매하진 못했지만, 운좋게도 공연시작 20분전 즈음에 극장으로 가서 남는 표은 살 수 있었다.

시간이 남아서 간 곳

저녁 7시까지는 시간이 붕떴던 터라, 프라하 근교의 카를슈타인(Karlštejn)이란 마을의 성을 가보기로 했다. 론리플래닛에는 디즈니풍의 중세성이라고 했는데, 날씨가 워낙에 개판이었던 까닭에 아니 4월에 우박이 웬말이냐고 경치고 나발이고...

성은 산중턱에 있었는데,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수 많은 기념품가게가 우리나라의 남한산 입구마냥 늘어서 있었다. 왠지 정감이 가는 장면.

이 성의 내부를 보려면 200쿠나짜리 가이드투어(1시간)을 구매해야하더라. 성외부나 안뜰 정도는 무료개방. 워낙 거지여행중이었던 터라 입장료를 내고 내부 투어를 돌 생각이 없었다. 대애충 둘레 몇바퀴 돌가가 하산을 내려왔다. 다시 프라하로 돌아가려 시동을 거니 날이 개더라. 씨팔 ㅎㅎㅎㅎ

돌아가는 길에 주유소에 들렀다. 디젤 값은 서유럽에 비해 약간 싼 편이었다. 연료를 막 넣으려고 하니 주유소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뭐라고 말을 걸었다. 체코어로 말을 걸며 차유리를 닦아주려 하길래 연거푸 “No, thank you.”를 외쳤으나... 이미 반짝 ㅠ.ㅠ 그러곤 팁주기를 바라는 해맑은 얼굴로 날 기다리더라. 울며 겨자먹기로 팁 30쿠나. ㅠ.ㅠ

36일차, 쿠트나호라와 세들레츠

이날 역시 또냐 또! 4월의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날 아침. 파벨 아저씨 집에서의 편안했던 마음을 짐과 함께 정리한 뒤 길을 떠났다. 첫번째 행선지 쿠트나호라(Kutná Hora)는 도시자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긴 하지만, 본좌 본 블로그에서 수차례 강조한 바, '유네스코 세계유산 ≠ 볼만한 곳'이란 말씀. 인류사적으로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단 곳이지, 니들이 보기좋은 곳을 골라놓은게 아냐.

눈발을 뚫고 도착한 쿠트나호라의 성 바르바라 성당은, 종교시설이라기 보단 고성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성당 맞은 편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하지만 날씨도 워낙에 추웠을 뿐더러, 월요일이라 그런지 도시내 여러 박물관이 휴관인 관계로 그냥 외관만 보고 패스. 돈도 굳고 좋지뭐.

다시 차를 타고 약 5분간 이동, 옆 동네 세들레츠(Seldec) 도착. 여긴 납골교회가 유명하다. 다소 엽기적인 여행명소.

이 교회에는 오래전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이 공동묘지를 없애면서 나온 4만여명의 뼈로 각종 종탑 및 샹들리에 등을 장식했다.

교회내부를 장식한 엄청난 양의 뼈와 해골을 보는데 30쿠나, 만약 사진을 찍는다면 추가 30쿠나라는 독특한 요금 체계였다. 특이한 것은 한국어 안내서를 준다는 점. 주요 여행지에 대게 일본어 안내서만 있고 한국어 안내서는 없었는데, 왠지 기분이 묘했다.

드디어 끝으로 이날의 마지막 행선지, 체스키크룸로프(Český Krumlov)에 도착했다. 세들레츠에선 차로 약 두시간 거리. 숙소는 '크룸로프하우스(Krumlov House)'라는 사설 호스텔을 예약해두었었는데, 미국인 남자와 인도인 여자가 운영하는 '미국풍' 호스텔이었다. 방명록을 보니 한국인들도 엄청 다녀간 듯.

이날 찍은 야경사진.

37일차, 체스키크룸로프 feat. 오스트리아 빈

엊저녁 늦게 숙소에 도착한 탓에, 공동부엌에서 정신없이 저녁을 해먹고 드립다 처잤다. 오늘은 오전나절 이 동네를 둘러보고, 저녁이 되기 전까진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할 예정이다.

체스키크룸로프는 한국와 일본 배낭여행객들이 유럽을 본 타겟으로 하기 수십년 전부터, 유럽본토의 젊은 배낭여행객들 사이에선 성지순례지와 같은 곳이었다.

18세기 이후 별반 변한 것 없는 고풍스러운 동네의 모습 덕분에 연간 수만명에 달하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1992년엔 크지 않은 동네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성문 아래쪽으로 나있는 해자(Moat) 에 진짜 레알 곰이 살고 있음.

세우자마자 불법주정차 딱지행

체스키크룸로프에서 드디어 딱지를 끊었다. 그것도 현장 적발행. 내용은 이렇다.

광장쪽으로 차를 몰고 갔다가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닫고, 잠시 지도를 보기 위해 은행앞 예약 파킹자리에 잠시 비상등을 키고 자를 세웠다. 진짜 뻥안까고 막 사이드를 당기니까 경찰이 오더라. 난 첨에 길잃은 사람 도와주려 온줄 알았는데, 보니까 500쿠나짜리 딱지를 유유히 건냄 ㅎㅎㅎ

이날은 때마침 체코를 떠나야하는 상황이라 체코돈이 없다고 하자, 친절히 은행까지 같이 가주겠다고 환전하라더라. 아니 그럼 차는 어떻게 하냐했더니, 여기 주차해두고 다녀오라고 ㅎㅎㅎ 야 이놈들아 ㅎㅎㅎ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빈

대망의 오스트리아 진입. 국경에서 간단한 짐 검사와 여권 검사를 마친 후, 오스트리아 고속도로 이용권(비네트) 10일짜리를 7.60유로에 구입했다. 점점 비네트가 늘어가는게, 마치 군대 계급장 느는 맛이다.

유난히 꽃샘 추위가 몰려오는 요즘, Wien으로 가는 길은 왠지 힘들었는데 시내 중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최적의 YH가 이번주 내내 예약이 완료되었다는 말에 더욱 짜증이 몰려왔다. 다행이 파벨 아저씨네 집 방명록에서 얻은 빈의 “한국 화가의 집”에 전화를 했고 4개의 침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날 예약해둔 숙소는 '한국화기의 집'이란 한인민박이었는데, 실제 화가는 맞았다. 다만 그림풍이 이발소풍. '한국화가' 주장에 따르면 한국에서 중국을 거쳐 유럽까지 장장 7년동안 말과 낙타로 여행을 하셨다하며, 현재는 오스트리아 부인과 이혼하였고 슬하엔 딸 하나. 아 근데 뭔가 믿음은 안 가는 분이었다. 뭐라 딱 찝어 말하긴 힘들지만 하여간 웬지 사짜 느낌이 스멜스멜.

여튼 도미토리 18유로에 한끼식사(조식 혹은 석식) 포함이고, 조석식 포함은 23유로. 반찬은 가짓수가 많았고 나쁘지 않았다.

본격 빈 여행기는 다음 포스팅에.

76일간의 유럽 자동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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