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의 실제 여행일은 2003년 3월 19~21일입니다.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옮기는 과정에서 작성일과 좀 차이가 납니다만, 여행 당시의 기록을 최대한 살리면서 현재와 다른 점은 부연설명을 더했습니다.

여행 17일차, 노르웨이 트론헤임

애초 계획은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스웨덴의 우메오(Umeå)까지 1,000킬로를 한번에 지르를 것이었다. 하지만 릴레함메르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 조언에 따르면, 해당 도로는 일반평지가 아닌 해발 2,000미터 산악고지의 2차선 도로라 시간도 많이 걸릴 뿐더러,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겨울이라 위험할수도 있다했다.

아저씨 조언에 따라 여정을 수정했다. 우선 릴레함메르에서 트론헤임(Trondheim)까지 E6 고속도로를 타고 간 뒤, 트론헤임에서부터 숙소로 내정된 유스호스텔이 있는 작은 마을까지 150킬로 가량을 E14 고속도로를 타고 안전하게 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날 날씨가 무척 안 좋았다. 산악도로가 험준한건 둘째 치고라도 눈이 워낙에 와서 속도가 더더욱 안 났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예정에 없던 트론헤임에서 하루 묵었는데, 사실 여긴 나름 인기있는 관광지다. 노르웨이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기도 하고,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명문대 트론드헤임 공대가 있기도 해서다. 대도시인 까닭에 유스호스텔 숙박비로 무려 205크로네를 지불한건 서비스.

니다로스 성당(Nidaros Domkirke).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중 하나다. 심시티4에 보면 요건물이 랜드마크로 들어있기도 하다.

옛날옛적, 바이킹형님들이 북유럽을 나와바리삼아 주변 여러나라 및 멀리 떨어진 미대륙 등지까지 진출하시어 가오잡고 계실 때, 성 올라프(St. Olaf)라고 하는 바이킹 왕이 계셨다. 이분이 뭘 하셨나면, 북유럽 전통의 다신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국교로 정해버리는 대실수를 하셨던 분 되시겠다. 바로 이 니아로스 성당은, 성 올라프 바이킹 왕이 묻힌 자리에 1070년부터 건설되어 지금까지 파괴-개증축-인테리어 변경 등을 거쳐 살아남고 있는 건물 되신 것이다.

여행 18~19일차, 스웨덴 순스발 ... 병원 (텍스트 압박주의)

트론헤임에서 몇몇 유명 여행지를 둘러본 후, 서둘러 스웨덴을 향해 차머리를 돌렸다. 노르웨이 트론헤임에서 아침 11시경 출발, 산을 넘고넘어 스웨덴에 이르렀다. 마땅한 점심거리를 찾던 중, 스웨덴 국경 근처의 한 주유소에서 사은행사로 와플과 따뜻한 커피를 무료로 대접하는 곳을 만나 공짜로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저녁 7시반, 마침내 스웨덴 순스발에 도착했다. 여기엔 전화로 예약해둔 유스호스텔이 있었는데 이게 웬걸 ... 지도를 뚫어져라 보고 찾아 헤매였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리셉션은 이미 철수해서 전화도 안 받는 상황. 하는 수 없이 순스발에서 약 260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우메오의 호스텔로 찾아가기로 했다. 이 당시엔 200~300 킬로는 우습게 주파하던 시절.

저녁 8시경, 우리 일행은 맥도널드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후, 다시 E4 고속도로를 탔다.

사건은 그 떄 발생했다.

뒷자리에 있던 일행중 한명이 급작스런 발작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손이 꺾이고, 거품을 물며, 눈은 흰자위만 보였다. 몸은 경련이 일듯 계속 떨면서.

무척 놀랐지만, 일단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 앉히고 차를 고속도로 갓길에 주차시킨 뒤, 차에서 환자를 끓어내 바닥에 눕히고 안정되기를 기다렸다. 급작스런 발작의 경우, 근육의 비정상적 경련으로 입을 꽉 다무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의 혀를 깨물어 잘라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일단 입을 벌려주고 거품이 기도를 막지 않게 고개를 젖쳐주며 약간의 인공호흡으로 기도를 안전하게 터놓았다.

이 와중에 한 일행이 고속도로 담을 뛰어넘어 인근마을까지 달려가(!) 소방구급차를 불러왔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인간승리 또 이 와중에 고속도로를 지나가던 서너대의 차량이 차를 세우고 이것저것 도와주었다.

발작증상을 보였던 그 친구는 마침내 깨어났으나, 자신이 최근 1~2 시간 전에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 했다. (이는 발작후 일반적 현상이다.) 앰뷸런스로 옮겨탄 뒤, 우리 일행은 인근 병원으로 안내되었고, 그곳에서 그 친구는 자세한 진찰 및 안정을 위해 1박의 입원을 권유했고, 당연히 응했다.

병원 관계자들은 이제 그 친구가 입원했으니, 내일 아침 다시 찾아오라고 얘기했지만, 저예산 여행객인 우리가 마음 놓고 지갑을 열만한 숙박시설이 주변에 없는 듯 했다. 결국 그러한 사실을 눈치챈 간호사분들께서 병원의 숙직실을 제공해주시며, 무료로 써도 좋다고 했고, 너무 고맙게도 샌드위치와 차를 대접해주며 일행의 놀란 가슴을 달래주었더랬다.

그렇게 하루는 지났고, 의사는 그 친구가 습관성 경기증세가 있는 듯 하다며,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크게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여행을 계속해도 상관없다는 말을 해주었다. 아울러 진료비는 차후 그 친구의 한국집으로 직접 청구할 것이니 당장 돈 걱정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곤 바로 퇴원.

하지만 다음날은 여행을 하지 않고, 이곳 순스발의 호스텔에서 하루정도 암것도 안 하고 쉬기로 결정했다. 엊그제만 해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는데,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정말 쉽게 찾을 수 있었던건 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스웨덴 사람들이 참 고맙다.

76일간의 유럽 자동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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