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의 실제 여행일은 2005년 5월 31일입니다.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옮기는 과정에서 작성일 간에 차이가 다소 납니다만, 여행 당시의 기록을 최대한 살리면서, 현재와 차이나는 점은 다소 수정하였습니다.

북아일랜드에서의 마지막 행선지에 들르는 날, 공식적으론 런던데리(Londonderry)지만, 데리(Derry)라고도 불리는 도시에 갔다.

명칭분쟁

원래 이름은 데리였다. 그런데 17세기 영국의 제도권에 놓이게되면서 데리 앞에 '런던'을 추가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영국의 공문서 등에 쓰이는 공식명칭은 따라서 '런던데리'이며, 북아일랜드의 왕당파들도 당연히 이를 선호한다. 하지만 북아일랜드 민족주의자나 아일랜드(공화국)에선 '데리'라고만 쓴다는 점.

그리고 제일 중요한게, 왕당파든 민족주의자든 상관없이 일상생활에선 '데리'라고 가장 많이 쓰는 모양이다. 야 이것들아, 이럴거면 뭐하러 분쟁하냐. 그냥 런던 빼. 자고로 이름 길어서 잘 된 케이스를 못 봄.

피의 일요일

1972년 1월 30일 일요일. 약 2만 여명의 시민들이 재판없이 구금을 강행한 영국정부에 항거하기 위해 시가행진을 시작했다. 이에, 영국군의 공수1대대가 진압에 나섰고, 이 와중에 비무장한 시민들을 향해 총격을 가해 14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전은 현재(2004년)까지도 재판에 회부 중에 있으며, 아직까지도 관련자 처벌을 하기 위해 진행 중이다.

2010년이 되어서야 재수가가 마무리되고 영국정부의 공식사과가 있었다.

14명.... 14명이다. 어찌보면 봉고 한트럭에 탈 수 있는 적은 인원.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상처를 아직도 이들은 후벼파고 있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광주민주화항쟁' 때 도대체 몇 명이 개처럼 죽어나갔던가?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폭도'라느니, '북의 공작'이라느니 개같은 말들을 지껄이고 있지 않나.

비극적이고 숨기고 싶은 역사적 사실이 있다는 것 - 이 사실이 창피한 것인가? 아니면 그런 사실을 숨기는 것이 창피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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