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말. 날씨를 보니, 아직 날은 덜 풀렸지만 기분만큼은 봄이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창덕궁과 북촌 구경을 나섰다.

창덕궁

흔히 경복궁이 조선의 메인 궁이라고 알려져있다. 사실 메인, 맞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통틀어 왕이 주거처로서 가장 오랜 기간 사용한 궁은 창덕궁이다.

가봐서들 알겠지만, 경복궁은 '궁'이라는 컨셉에 맞춰 짓느라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반면, 창덕궁은 주변 자연지형과 어울려 궁의 형식 요소를 배제하고 일반 사가처럼 자연스럽다. 더군다나 정치 공간으로서 경복궁이 주는 위압감과 피내음이 진동했던 역사 때문인지, 조선 초기부터 왕들은 줄창 창덕궁을 선호했다.

더군다나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창덕궁 모두 소실되었을 때, 재건을 먼저 명한 곳도 창덕궁. 흥선대원군이 복원을 지시할 때까지 사실상 부서진 채로 놔둔거다.

사극에 자주 나오는 홍문관이 여기다. 액호는 옥당이지만, 홍문관의 관사로 쓰였기 때문에 홍문관이라고 부른다.

인정전. 신하들 막 모여서 전하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하는 데가 여기다.

자신의 미래를 점친 둘째.

저 노란색 커튼은 조선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국임을 자청하면서 달아놓은 것들이다.

첫째.

왕비의 침실, 대조전. 첫째가 다리가 아픈지 널부러져 있다.

낙선재

창덕궁의 부속건물이지만, 궁보다 더 잘 알려진 곳이 낙선재다. 조선이 망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도, 황실의 가족들이 기거했던 곳으로,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페이지가 여기서 끝났기 때문이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물론 영화의 캐릭터는 다 허구지만) 덕혜옹주와 일본이지만 폐족 이씨왕가에 시집온 이방자 여사가 1989년 사망할 때까지 이곳에 실제 거주했다.

둘째만 안아준다고 첫째가 울었다.

영감탱이 혐오증

정말 이러다가 영감탱이(참고로 영감탱이란 표현은 경상도에선 정감어린 표현이므로 노인비하의 의도는 당연 없음) 혐오증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날 창덕궁에 들어가기 위해 매표소의 긴줄에 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 앞으로 두명의 노인이 위풍당당하게 새치기하더라. 첨에 '저기요'하고 불렀는데, 아무래도 영감탱이다 보니 잘 안 들렸나싶어, 매고 있던 가방을 노크하며 '저기요'하고 부르니 그제서야 뒤를 돌아봤다. 근데 웃긴건 갑자기 영어 시전. 'I'm free. I'm free.' ... 뭐지, 이 신선한 대응은? 해방된 노예들인가?

나: 아니, 뭔 되도 않는 영어를 써요?
새치기 영감탱이들: 아, 한국사람이네? (씨발 이 응대는 뭐야 ㅠ.ㅠ) 아, 나 노인이라 창덕궁 공짜야. 그냥 표만 받아가면 되니까 나 여기 좀 설게.

나: 예, 됐고 뒤에 서세요.
새치기 영감탱이들: 아니, 나 공짜라니까? 공짜?
나: 네, 공짜로 뒤로 가시고요.

내 뒤에 줄서있던 한 아저씨: 아거 보소. 여기 지금 마 아침부터 나와가 마케 다 줄서있는데 와 새치기하고 그카능교? 뒤로 오소마! 여 뭐 외국사람도 많은데 참말로 나라망신이데이.

내 뒤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항의하자 이 영감탱이들은 실제로 줄서있던 사람들에게 상욕을 궁시렁 퍼부으며 뒤로 가더라. 실제 이 줄에 외국인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나랑 우연찮게 눈이 마주친 한 외국인이 나에게 '저 영감탱이들 크레이지 맨'이란 제스처를 보이기도.

이러다 정말 영감탱이 혐오증이라도 걸릴까 두렵다.

북촌

창덕궁도 봤겠다. 북촌에 가봤다. 생각보단 별거 없더라.

첫째 좋아 죽네 죽어.

옛날 이런 목욕탕에 아버지랑 종종 가곤 했었지. 목욕탕에서 아버진 항상 이발하시고.

오늘 여행 여기서 끝.

이 여행기의 실제 여행일은 2016년 3월 27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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