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시를 떠나 다음 행선지로 가는 길. 비바람이 심상찮았다. 더군다나 와잎은 그날이 왔음을 호소하며 끙끙 앓는 소리까지 내던 상황.

구주쿠리마치(九十九里町)

구주쿠리마치에 도착했다. 편의상 앞으론 그냥 구주쿠리라고만 하겠다. (왜 편의상 그러는지는 아래 참조) 동네이름에서도 휠이 오겠지만, 이 동네는 그냥 바닷가 작은 마을이다. 역사적인 유적이 많은 곳도 아니다. 물론, 앞선 포스팅에서 일본 최초로 정밀지도를 제작한 이노다다타카(伊能忠敬)가 살았던 집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동네엔 그가 태어난 집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볼거리가 있진 않다. 이 동네를 유명하게 만든건 오직 하나, 끝이 안보이는 드넓은 백사장과 서핑 등의 다양한 해양레저로 넘처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좁다란 마을길을 지났다. 오로지 드넓은 백사장을 보겠단 일념으로.좁다란 마을길을 지났다. 오로지 드넓은 백사장을 보겠단 일념으로.

아나... 현욕 튀어나오려고 그러네 씨팔.아나... 현욕 튀어나오려고 그러네 씨팔.

일본의 행정구역, 정(町)

정(町)이란 일본의 행정구역 단위로, 시(市)보다 작은 단위라고 보면된다. 우리식 한자독음은 '정'으로 한가지이지만, 일본에서는 '초(ちょう)' 혹은 '마치(まち)' 두가지로 읽힌다. 그렇다고 화자 맘대로 둘중 택일하여 읽는 건 아니고, 각각의 이름마다 읽히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일본인에게도 헬인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대체적으로 일본 동부에선 '마치'라고 읽히는 이름이 많고, 반대로 서부에선 '초'가 많다고는 하는데, 꼭 그런건 아니라 더 생지옥. 그렇지만 오키나와현의 모든 정은 모조리 '초'로 읽힌다! 이래저래 일본에선 오키나와를 가야...

서둘러 가모가와(鴨川)로...

가모가와엔 특별한 볼일이 있었다기 보다, 그냥 예약한 숙소가 여기 있었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위치한 전객실 바다조망의 호텔, 이름은 '호텔 그린 플라자 가모가와(ホテルグリーンプラザ鴨川)'였는데, 그렇다고 부티크급은 아니고 1970년대 한때나마 최고의 호텔로 각광받다 지금은 그냥 그렇게 잊혀져가고 있는, 일본의 수많은 산업화시대 레트로풍 호텔되겠다. 당시 우리가 묵었던 방이 1층이라 쓰레빠만 신으면 곧바로 바다로 나갈 수도 있었지만, 날씨의 도움을 받지못해 failed.

허망한 가슴을 부여잡고 가모가와로 향하다보니 배마저 허망해짐. 그래서 국수 한그릇.허망한 가슴을 부여잡고 가모가와로 향하다보니 배마저 허망해짐. 그래서 국수 한그릇.

다시 계속 가는중.다시 계속 가는중.

호텔에 다왔을 무렵 다소 음침한 숲을 만났다.호텔에 다왔을 무렵 다소 음침한 숲을 만났다.

당시 이 호텔이 맘에 들었던 점은, 지극히 개인적인데, 대중탕이 있었던 것. 사실, 일본의 호텔에 대중탕이 있는 경우가 나름 흔한 편이다. 하지만 최근 지어진, 이른바 부티크 호텔에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인데, 여긴 오래전에 지어진 곳이라 그런지, 바람부는 날 피폐해진 몸을 추스릴 수 있는 대중탕이 있어 더할 나위 없었다. 또, 객실을 안내해주던 직원도 어찌나 친절하던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기고 다음달 휴가 한국으로 갈꺼라고 뭐라뭐라하던데, 잘 못 알아먹음. 나는 그 양반 무안할까봐 계속 '하이, 하이'이랬는데, 지금 생각하니 미안허네...

화려했던 석식 뷔페

많이 먹고 푹 쉴 요량이 있었기 때문에, 이 호텔을 예약할 때 2식(조석식)을 선택했다. 온탕에서 뜨끈하게 몸을 지진 후, 저녁 뷔페를 향하니 이게 웬걸, 이날의 스페샬은 대게. 쌓아놓고 먹는 맛이 이맛이구나 싶을 정도로 미친듯 먹었다.

여튼 이날 이렇게 별거 한거 없이 씹고뜯고맛보며 후딱 지나갔더랬다. 남은 것이라곤 온탕에 불을대로 불어버린 나의 몸.

이 여행기의 실제 여행일은 2010년 6월 20일, 즉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전입니다. 현재 이곳에 소개되고 있는 여행지는 방사능 유출로 인한 위험성이 있을 수 있으니, 각자 신중히 판단하시어 여행을 계획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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