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우드에서 맞이한 아침. 이때 이후부터 긴 서사시가 시작되었다.오크우드에서 맞이한 아침. 이때 이후부터 긴 서사시가 시작되었다.

이름모를 한인민박에서의 안 좋은 추억

오크우드에서 체크아웃하고 전날 급하게 예약했던 이름모를 한인민박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건 큰 실수였다.

방에 들어가보니 세미더블 사이즈 정도의 침대 매트리스 하나만 덜렁 깔려있었고, 그 외에 나머지 공간은 사람 한명이 겨우 서있을 수 있을 정도의 폭만 남아있었다. 방이 작은건 그렇다치고, 문제는 창문 하나를 옆방과 나눠쓰는 구조란 점. 즉 내가 창문을 열면 옆방은 부득이하게도 닫혀버리는 자동민폐의 구조였단 점이다. 추가적으로, 에어컨도 옆방과 정확히 절반으로 나눠쓰는 구조였기에, 역시나 내가 에어컨을 끄면 저쪽은 느닷없이 쪄죽는 상태가 된다는거다. 덤으로 옆방과 우리방은 우드보드지 굵기의 벽(?)으로만 가로막혀 있기에 층간소음을 뛰어넘는 획기적 방간소음 구조. 아니 씨발 옆방은 뭔죄야 ㅋㅋㅋㅋ 형광등도 안 나눠쓰게하는게 다행이라면 다행

도쿄의 물가를 고려했을 때 비록 가격은 쌌지만 그래도 2박에 15만원 정도 이건 너무했다싶어 1박만 하고 나가겠다하니,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돈은 돌려줄 수 없다고... 애초 2인실 독방이라고 해놓고, 이건 거의 도미토리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따졌지만, 주인장은 어찌되었든 벽이 나뉘어져 있으니 그런거 없음으로 일관하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하여간 한국사람들은 진상도 참 많아~! 내가 더러워서 한인민박 안 하려고 진짜!"라고... 이거 실화입니다. 진짜로 민박집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니깐요! 한국인 진상 많다는 거 굳이 부인않겠다만, 한국사람들'만' 상대로 불법 숙박업을 하는 처지에 이게 뭔 김무성의원 미군 어부바하다 허리 삐끗하는 소리인지.

어르고 달래봤지만 완강하기에, 초강수를 두기로 했다. "아저씨, 그럼 저 일본어도 좀 되겠다, 걍 지금 일본경찰에 불법영업으로 신고할게요. 돈 주지마요. 나 죽고 아저씨 죽읍시다."라고 말하마자 돌려준다더라... 이게 무슨 개좆같은 소모전인지.

한바탕 설전(전화로)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니 주인장 아주머니가 마침 계셨다. 원래 주인부부는 다른 집에서 기거하고 숙박용으로 사용중인 민박집은 간혹 들르는 모양인데, 우연찮게 마주쳤던게다. 대애충 목례만 하고 지나가는데 뒤에서 "아니 무슨 돈을 돌려달라그래? 어휴 재수없어~" 본인, 이 시점에서 완전 폭발했다. 이때는 한창 월드컵기간으로 이 한인민박에 묵고 있던 젊은 대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축구시청중이었는데 그딴거 없음. 그냥 폭 to the 발.

"거, 아줌마 이리 와봐요. (존나 큰 목소리로) 여기 보라구요! 거 뭐요? 여기 학생들 있는데 망신한번 당해볼려구요?" 진짜 존나 큰소리로 냅다지르니 거실에 있던 학생들이나 아주머니, 심지어 우리 와잎도 완전 개깜놀하더라. 그러자 아주머니 왈, "아니 난 그냥 그 환불이란게..." "아 진짜, 거 다끝난 얘기 아뇨? 내가 지금 졸라 씨발 전화를 30분 붙잡고 결론났는데, 뭐 또 딴소리 할거면 나와요! 당장 나와요! 여기서 망신 안 당하게 해드리려고 배려해서 내가 밖에서 얘기해드리려는 거니까 나오셔!" 대학생들이나 와잎 죄다 얼어붙고, 아주머니는 궁시렁궁시렁 하더니만 그 자리에서 갑자기 현찰 환불해주더니 나가더라.

이 지면을 빌어 그때 학생들에게 미안하단 얘기 전한다. 형이 그땐 씨발 존나 빡쳐서 그랬다. 진짜 미안하다. 그때 학생들 이 블로그 만약 봤다면, 방명록에 연락줘라. 술산다. 아 그리고 사진... 이렇게 개같은 일을 겪었으므로 사진은 없다. 이해들 하시길.

니시신주쿠 호텔 마이스테이즈 (西新宿ホテルマイステイズ)

위와 개주옥같은 일을 겪은 후 마지막으로 숙박한 곳이 바로 여기다. 도쿄에 3박 있으면서 3박 모두 숙박이 다른 위엄 보소... 부킹닷컴으로 후다닥 예약한 호텔인데, 일단 신주쿠역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고 도보로 약 3분 거리로 접근성은 와따인데다가, 주차장도 있다. 당시 렌터카 여행중이라 주차장있는 숙박이 고려사항 1순위였는데, 닥치고 선택의 큰 역할을 함.

어매니티도 적절했는데, 한가지 특이했던 점은 프론트 요청시 샴푸 등 욕실용품을 다른 브랜드로 바꿔주는 서비스. 이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어서인지 호텔입구서부터 엘리베이터까지 주리장창 포스터를 붙여놨었다. 조식이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한데, 아시다시피 일본 편의점은 우리나라로 치면 거의 음식점수준인데, 주변 100미터 거리에 편의점이 경쟁적으로 들어서있는 도쿄이므로 생략했더랬다.

호텔 앞에서의 여름밤 쌩맥 + 생선회의 추억

이 호텔에서 재미난 일이 있었는데, 도쿄에서 보내는 마지막날 밤 술한잔 할 겸, 호텔앞 생선회집에 갔다. 일본은 주로 선어(鮮魚)회라고 하여, 포를 뜬 생선을 며칠 숙성시킨 후 먹는게 일반적인데, 특이하게도 이 호텔 앞엔 우리나라처럼 수조에서 활어(活魚)를 잡아다가 바로 회쳐주는 집이 있었다. 물론 모든 생선이 활어는 아니었고, 그러려면 수조가 아니라 아쿠아리움이 필요해 이것들아! 수산시장 생선좌판마냥 얼음 위에 디피되어있던 생선들도 있었다. 점원과 함께 생선을 고르면 그자리에서 회를 떠 상에 내는 식이었는데, 자리도 길거리에 까지 테이블을 깔아놓아 여름밤 시원한 쌩맥에 회먹는 기분내기 그만인, 그런 곳이었다.

와잎과 함께 가게에 들어서자 회를 뜨던 요리사들과 점원들 입에서 "이랏샤이마세~"가 울려퍼치고, 한 점원이 다가와 (늘그러하듯) "몇분이세요?"를 물었다. "2명입니다. 이쪽 (앉아도) 괜찮죠?"라고 대꾸하니, "하이! 도조! (네, 그러세요!)"라고 답한다. 그래서 와잎에게 "여보, 이쪽에 앉자."라고 하니, 대뜸 그 점원, "어? 한국분이세요?" 아놔 이게 무슨 상황 ㅋㅋㅋㅋ

알고보니 점원은 한국학생인데 알바중이라고. 그 이후부턴 생선도 추천받고 한국말로 "여기, 오백 하나 더요!"도 시전하고, 너무도 편한 마음으로 도쿄에서의 마지막날 밤을 보낸 추억이 있다. 그리고 이 추억 때문인지, 다음번에 도쿄, 아니지 정확히는 도쿄 신주쿠 지역에 갈거면 이 호텔에 묵을까 생각중이다. 물론 그 횟집이 아직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사진... 너무도 느닷없었던 추억이라 사진 따윈 없다. (역시나) 이해 좀 해주시길.

미칠듯한 백화점쇼핑에서의 일화

이 포스팅을 유심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2010년 6월 28일부터 29일, 이틀간의 이야기이다. 근데 이틀 동안 여행 안 가고 뭐했냐고? 암것도 한게 없다. 적어도 나는.

사실 이 여행은 신혼여행이었는데, 와잎께서 천명하시길 도쿄에서는 무조건 백화점만 돌아댕길 것이니 그리 알라하시고... 백화점에 내가 할거라곤 멘탈리티를 비운 심장을 붙잡고 쓰레빠나 찌익찌익 끌고 다니며 영혼없는 리액션을 해주는게 다. 그나마 제일 즐거울 땐 지하 식당가에서 우동이나 한그릇 호로록 말아먹는게 낙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래봤자 2010년 6월 28일부터 29일 두 날중 하나겠지... 본인 급 피곤함을 호소하며 잠시 쉬다 오겠다고 얘기해봤더니, 이게 웬걸 쏘쿨하게 그러다오라네. 너무도 신난 마음에...은 개뿔, 진짜 너무 피곤해서 백화점 내에 어디 앉아 있을 곳이라고 찾았으나 어지간한 벤치는 이미 선점상태였다.

그러던 중, 엘리베이터 옆을 지나가 '음, 저 계단에 앉아 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실행에 옮겼다. 그래서 내가 자리를 잡은 곳은 백화점 엘리베이터 옆 계단. 털썩 앉으니 여기가 내 집인가 싶을 정도로 다리의 피로가 풀렸다. 그리고 솔솔 쏟아지는 오후 나절의 조름...

본능적으로 숙인 고개를 들었을 땐, 정확히 한시간 후였다. '아, 이제 일어나서 와잎한테 다시 가봐야겠다'하고 자리를 털었는데... 내 뒤엔 또래의 일본 남자들이 계단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졸고 있었다.

아직 결혼 안한 총각들은 잘 들어라. 항상 결정은 신중히 또 신중히 하고, 어지간하면 결혼 말고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길 바란다. 니가 그 어떤 상상을 하던 그 상상을 뛰어넘는 지옥을 맛보리니...

백화점 계단에서 처잤는데 사진이 있겠니? 응, 그래 이번에도 없어.

생선뼈로 국물을 우려낸 신주쿠의 라멘집, 멘야카이진 (麵屋海神)

이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사진들은 거의 이 라멘집에서 찍은 것들이다. 번잡한 신주쿠 골목의 허름한 건물 2층에 자리잡은 이 식당은 이미 일본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제대로 탔기 때문에, 점심시간에는 1층 건물 입구까지 줄이 늘어서있었다.

기존의 라멘 국물이 돈코츠(豚骨)나 쇼유(醬油; 간장) 베이스인게 대부분인 반면, 이집은 생선뼈로 국물을 우려내는 특이한 집이다. 물론 이미 검증된 집이기 때문에, 혹 비리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프로레슬러 허리접듯 접어도 좋다.

라멘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라멘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

어떻게 처묵하는게 좋은지 만화로 안내되어 있더라.어떻게 처묵하는게 좋은지 만화로 안내되어 있더라.

마침내 나온 생선뼈 라멘. 국물은 시원하고 담백하며 깔끔 그 자체였다.마침내 나온 생선뼈 라멘. 국물은 시원하고 담백하며 깔끔 그 자체였다.

블로거지들의 블로그를 어쩌다가 들르게되면, 한번간 음식점도 무슨 씨발 정리벽이 있는지 졸라 맛집처럼 포스팅지랄 하던데, 내가 그게 싫어서 어지간해선 음식점따윈 내 블로그에서 소개하지 않고 있다...지만, 여긴 초강추.

이렇게 도쿄에서의 다사다난했던 날들을 마쳤고, 이제 내일, 이번 신혼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로 떠난다.

보너스로 신주쿠 야경샷 투척. 진짜 삼각대도 없이 똑딱이로 이거 찍느라 고생좀 했다.보너스로 신주쿠 야경샷 투척. 진짜 삼각대도 없이 똑딱이로 이거 찍느라 고생좀 했다.

이 여행기의 실제 여행일은 2010년 6월 26~27일, 즉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전입니다. 현재 이곳에 소개되고 있는 여행지는 방사능 유출로 인한 위험성이 있을 수 있으니, 각자 신중히 판단하시어 여행을 계획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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